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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법 역사 : 비행의 꿈과 실현

부지런한 직장인 2022. 6. 16.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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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고 싶은 욕망

인간이 태어나서 새가 나는 것을 지각하는 때부터 새같이 날고 싶은 욕망을 가졌으리라 하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인간의 날고 싶은 욕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손재주가 뛰어난 장인인 Daedalus가 자기 아들 Icarus와 함께 크레타섬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는데 탈출을 꿈꾸는 아들을 위해 Daedalus는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 붙여 날개를 만들어 주었다 한다. 이를 이용하여 탈출에 성공한 Icarus는 들뜬 마음에 하늘 높이 올라가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 바람에 덜어져 죽었다 한다.

 

중국인들은 불꽃놀이를 위하여 처음으로 화약을 사용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화약은 유럽에 건너가서 무서운 무기가 되었다. 중국인들은 또한 예수탄생 200년 전에 연을 날릴 줄 알았으며 태국 샘 족들은 등을 날려서 놀이를 하였다 한다. 이러한 순진한 놀이는 유럽으로 건너가서 사람이 나는 시도로 연결되었다.

 

 

#2 처음의 비행들

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과학적 연구는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새의 모습과 움직임을 모델로 삼았으며 근대의 Plato라고 불리는 이태리 Taranto에 사는 Achitas는 느슨한 날개와 함께 나무로 비행기틀을 만들었다 하며, 기원 후 60년 로마에서 열린 축제에서는 사람이 인공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날려다가 죽은 일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역시 로마에서 나중에 비슷한 시도를 한 요술사 Simon이 다리를 다친 것으로 되어 있다.

 

기원 후 850년경 아랍 학자인 Ibn Furnas가 비행에 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하였으며 10세기 말경 영국의 Benedict 수도원의 승려 Oliver de Malmesbury가 탑 위에서 뛰어내려 날려 하다가 요술사 Simon과 같은 부상을 당하였다. 12세기에는 흰 긴 옷 밑 부분을 버드나무 가지로 엮어서 날개 역할을 하도록 한 후 이 옷을 입고 비잔틴 왕국의 창제인 Emmanuel Comnenus 앞에서 날려 하였던 사라 센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날고자 하는 욕망과 시도로 목숨도 빼앗겼지만 이 중세기에 처음으로 학자와 신학자들이 나는 가능성에 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대게 주위에서 벌어지는 시험적인 비행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엿는데, St. Thomas의 선생이며 철학가인 Albert는 "공기는 불 옆에 있을 때 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라고 기술하였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Admirable Doctor 칭호를 가졌던 Roger Bacon(1214~1294) 은 Desecretis operibus artis naturae라는 그의 저서에서 새가 나는 방법과 같이 공기를 때리는 날개 형태의 시동핸들을 하용하여 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시동핸들은 Leonardo da Vinci에 의하여 처음으로 고안되었다. 우리에게 화가 또는 조각가로만 주로 알려진 그는 작가이며 엔지니어이기도 하였는바, 그에 의하여 역시 처음으로 사람이 바퀴를 돌려서 나선형의 프로펠러를 움직이도록 하는 헬리콥터가 고안되기도 하였다. Leonardo da Vinci로부터 과학적 접근이 시작된 이래 1600년경에 이태리인인 Guidotti가 고래 뼈에 깃털을 붙여서 날개의 틀을 만들어 가지고 날았으나 실패했다. 1600년에 영국인 Hook가 막대기와 비슷한 날개에 의하여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었다.

 

1678년에 프랑스에서 자물쇠 제조업을 하는 Besnier가 오늘날의 행글라이더와 비슷한 기구를 만들어서 gliding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처음으로 공중에서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1709년에는 브라질의 승려이며, 포르투칼의 왕 Jean 5세의 성직자이기도한 Bartholomeu Laurenco de Gusmao가 꼬리 부분에도 날개를 단 새 형태의 틀을 발명한 후 이를 뜨거운 공기로 가득 채운 종이풍선에 부착시켜 날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나는 이 장난감을 그 뒤 리스본 왕궁에서도 실험하였다.

 

1742년에는 Bacqueville 후작이 인조날개를 달고 파리의 Seine강을 나는 것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768년에는 Pancton이라는 자가 Leonardo da Vinci의 헬리콥터와 프로펠러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켰다. 1772년에는 Desforge라는 프랑스의 한 수도원장이 나는 운송기구를 만들었으나 이를 날리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역시 프랑스인인 Blanchard가 같은 디자인으로 1780년과 83년 사이에 이를 시도하였으나 별 성과가 없이 끝났다.

 

지금까지는 수직 또는 수평으로 간단히 나는 것만이 시도되어 왔으나 1783년 11월 21일에는 처음으로 수평, 수직이 가미된 9회 비행을 하는 데 성공하였다. 프랑스 Montgolfier 형제가 발명한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기구를 이용한 동 비행은 세계 최초 유인 비행으로 기록되는 바, Pilatre de Rozier가 공기를 부풀린 벌룬을 타고 난 것이었다.

 

 

#3 첫 비행규제

1783년 Montgolfier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구를 타고 제대로 비행을 시작한 이래 국가 지도자와 행정관리들은 자국영토상에서 이러한 비행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 중에서도 프랑스 파리경찰은 1784년 4월 23일 특별허가 없이 비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처음으로 제정, 공포하였다. 세계 최초의 항공법이 되는 동 규정은 발화물질을 부착하고 있는 벌룬과 기타 비행기구를 제작하고 날리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기타 발룬도 허가 없이는 날려 보낼 수 없다고 정하였다. 이러한 국가의 간섭은 인간의 욕망과 활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육상 및 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 2단계에서는 국가 간 또는 국제기구 활동을 통해 국가가 비행활동을 장려하는 것으로 변한다. 상기 파리경찰이 발표한 규정과 같이 일부 지역적인 국가의 통제가 있었지만 국가는 아직도 배후에 서서 개인의 비행을 위한 각종 시도와 발명을 구경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1785년 Montgolfier 벌룬을 타고 프랑스의 Pierre Blanchard와 John jeffries가 세계 첫 국제비행으로 간주되는 영, 불 해협 횡단을 했을 때 영국은 자국이 더 이상 섬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위협감을 느끼면서 자국 함대에 의한 방어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1819년에는 프랑스 Seine주가 비행안전을 위한 규정을 공포하였는바 동 규정은 안전의 관점에서 벌룬에 의무적으로 낙하산을 비치하도록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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